총칼을 들고 싸우는 무장독립운동이 아닌 전혀 다른 각도에서 독립운동사에 중요한 역할을 했던 독립운동가 분들도 있습니다.
백정의 아들로 한국에서 최초로 외과의사가 되어 청진기를 들고 조국 독립을 위해 싸운 박서양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박서양의 아버지였던 백정 박성춘이 장티푸스에 걸려 고생할 때 의료 선교사이자 제중원 의학교 원장이던 에비슨이 신분을 차별하지 않고 치료를 해줬고 이 사건으로 박성춘은 기독교인의 되어 구국운동, 백정 해방 운동, 계몽 운동을 적극 전개합니다.
이러한 인연으로 박서양은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병원인 제중원에 입학하게 되고 제1회 졸업생되어 한국 최초로 의사면허를 받게 됩니다.
의학교수라는 안정적인 직업으로 후진을 양성하면서 충분히 개인적인 명예를 누릴 수 있었던 상황이었지만 박서양은 당시 의료 환경이 열악하던 간도로 이주하여 독립군을 포함한 간도 지역 조선인들의 진료를 위한 구세병원을 개업했고 숭신학교를 세워 교장을 역임합니다.
또한 독립운동 단체였던 대한국민회에 가입하여 독립운동에 뛰어들었으며, 1919년 대한국민회 군사령부에서 최초이자 마지막이던 군의관을 맡아 만주에서 벌어진 의병 전투에도 종군합니다.
하지만 1932년 6월 윤봉길 의거 사건 직후 그가 세운 숭신학교가 불온사상을 고취한다는
이유로 폐교되어 독립운동에 대한 기반이 무너지게 되자 고국으로 돌아오게 되고 4년 뒤인 1940년 12월 15일 5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그리고 2008년 8월 15일 독립 운동의 공로로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건국포장이 추서되었고
그를 모티브로 한 드라마 ‘제중원’에 의해 다시 세상에 나오게 됩니다.
CBS노컷뉴스와 '역사N교육연구소' 심용환 소장이 함께하는 '근현대사 똑바로 보기'는 의사이자 교육가 그리고 독립운동가 박서양의 삶이 지금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살펴봤습니다.